'백년의 정원' 중에서..

2008. 10. 21. 04:48 from Book


"정원에 들어서면 내 몸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점점 줄어들어서 마침내는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숲의 요정처럼 작아져버려요. 인간은 다 똑같아요. 자신은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뒷모습을 보면 잘 짜여진 원근법처럼 몸이 작아져서, 목련나무 아래서는 누구나 소녀가 되고, 적송의 이끼 정원에서는 다람쥐가 되고, 밤나무와 호두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작은 새가 되며, 로즈 가든에 이르러서는 마치 무당벌레처럼 작아져버리고 말아요. 그러다가 사라져버린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인 듯한 얼굴을 숙이고, 가쿠라이 시게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이어 나갔다.


내가 죽으면 다에코는 시코산장의 정원을 마음대로 바꿀 테지요. 이제 곧 백년이 지나 각하가 만족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될 그 정원을.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쌓아올려 마침내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정원지기입니다.

오토와 다에코도 아니고 가쿠라이 시게도 아니며, 그렇다고 정원사는 더더욱 아닌,
시코산장의 정원지기에 지나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지구상에서 풀과 나무와 꽃이 사라질 때까지 영원히.

다에코의 장미는 먹고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틸다.
봄에서 가을까지 엷은 분홍색 꽃을 피우는 플로리 반다의 명품종이지요.


사고루기담 중, '백년의 정원'에서


Posted by 젤리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