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예쁜 표지에 반했습니다. "도시에서 귀향한 주인공의 흙냄새 물씬한 자급자족 생활기"라는 광고문구와 그 문구에 걸맞는 자연스럽고 예쁜 여주인공의 모습에 한번 더 반했더랬지요. 만화책값이 오른 후 늘 보던 만화, 고르고 골라 엄선한 만화책 (주로 시리즈물에 전투물)만 사다보니 새로운 만화를 보고싶어진 이유도 있지만요.

사실 표지의 그림을 기대하고 만화책을 펼치면 몇페이지 채 넘기기도 전에 읍컥!!하게 됩니다. 금방 익숙해집니다만, 가볍고 깔끔한 그림체가 아니라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저분해보이는 선이거든요. 잔잔한 일상을 꾸밈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정돈된 펜선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놀라실지도 모르겠어요.

만화의 내용은 정말 단순합니다. 앞뒤 없이, 정말 일상을 그대로 옮긴 이야기라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기까지 해요. 블로그의 포스팅과도 닮았네요. 그날 있었던 일 중 한 부분을 뚝 떼어 그림으로 옮겨뒀습니다. 밭일을 하고, 마을 사람들과 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 하고 어른들에게 들은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주위에서 발견한 - 어머니가 심어둔 - 채소를 수확해 추억의 요리를 하기도 해요. 옛날집에서 옛날 도구를 사용해 빵을 굽기도 하면서 팁이나 간단한 요리법을 실려두기도 합니다. 밤밥같은건 직접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농촌의 이야기이다보니 오히려 도시에서 구하기 힘든 야채도 많아서 남의 이야기 같은 것도 있어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만화입니다. 세세하게 나와있진 않지만 그녀가 추억의 요리를 만들었을 때 얼핏 흘리는 지난 이야기는 서글픈 이야기가 많습니다. 원래 추억이란 애잔한 법이지만 그녀는 혼자 살아가고 있고 스스로를 '도시에서 도망쳤왔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서글프더라구요. 특히 어머니가 해주던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죄책감과 쓸쓸함이 가끔은 책장 넘기는 걸 멈추게 만듭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해먹고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먹고 주위에 주어진 재료를 이용해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가는 아가씨. 맛있는 요리를 한다는건 정성도 많이 들어가고 번거롭기도 한 일이잖아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살아갈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슬프지만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녀는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둔 것 뿐이거든요.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듯,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듯. 취나물같달까.

향긋하지만 쌉싸름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책 뒷편에 쓰인 광고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닌데 괜히 그렇더라구요. 꾸미지 않아도 예쁜 아이를 억지로 화려한 옷을 입히고 어른 화장을 시켜 앞에 내세워둔 기분이 들었거든요.

횡설수설한 리뷰의 끝을 인상적이였던 문구로 마무리해봅니다. 그녀처럼 도시에서 귀향한 후배가 한 말인데 아,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이나 하는, 타인이 만든 것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기만 하는 인간일수록 잘난 척만 하지. 천박한 인간의 멍청한 말을 듣는 게 이젠 지긋지긋해졌어. 여길 나가고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라고." (p 128)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건 정말 작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그건 그렇고 난 지금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거지?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고 읽는 내내 생각한 것은 많은데 몇번을 써봐도 내가 잘 표현한건지 모르겠어요. 쓰면 쓸수록 수렁에 빠지는 이 느낌!!! 형식이 만화일 뿐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잔잔하고 정말 좋은 이야기예요. 멋져요, 멋지다고!!! 아놔 리뷰쓰면서 이렇게 책에 미안해보기도 또 오랜만이네onz


덧붙이기) 책 이미지를 얻기위해 YES24에서 표지를 찾다 한번 더 깨달은건데 슬로우푸드라이프는 맞는 말이고 요리에 관한 부분이 많긴 합니다만 내 손으로 재배해 직접 만들어먹는 기쁨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자연의 은총 내지는 소박한 삶의 기쁨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이 책과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나만 저 광고문구가 마음에 안드는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광고문구가 마음에 걸려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 빼봅니다.

 


Posted by 젤리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