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카리브해에 누워-

2007. 5. 19. 00:00 from Book


  '아니, 그건 납치 강도가 아니잖아! 납치범이라는 녀석이 총부터 쏜단 말이야? 나 멕시코시티 절대로 안 가!'

  하지만 그 뉴스도 아내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아내가 무서웠다. 어느 아내가 자신의 남편과 딸을 사지로 몬단 말인가?
 
  사건 소식은 계속 되었다. 정말 이상도 하지. 특별히 찾아보는 것도 아닌데, 인터넷 뉴스 해외토픽란에서 우리가 가기로 한 여행지만 유독 눈에 띄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카리브 해의 해변 '칸쿤'에 관한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우리의 두 번째 여행지다). 칸쿤의 남쪽 '플라야 델 카르멘'이라는 지역에서 친구를 살해하고 그 인육을 먹으려고 한 희대의 엽기 살인범 소식이었다. '아마도 데 디오스 아리아스(26세)'라는 청년은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죽이고, 사람의 살은 어떤 맛이 나는지 궁금해 그를 요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범인은 친구를 살해한 후 피가 빠지도록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두었으며, 심장은 따로 먹으려고 가스레인지 안에 넣어두었다고 태연하게 진술해 경찰관들을 경악케 했다고 한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아내를 불렀다.

 "중남미의 소설 속에 나오는 기괴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

 이번 여행은 뭔가 불길하다는 것이 일관된 나의 주장이었다. 그렇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 이런 뉴스를 접한 뒤에도 돈 들여가며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행을 가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단 한 녀석도 없을 것이다. 한참 동안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멕시코는 경유만 하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쿠바를 여행하는 것도 걱정되긴 했지만, 멕시코를 피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목숨은 건진 듯한 느낌이었다. 쿠바에 관한 소식이라고는 카스트로가 쿠바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더 이상 달러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는 것 정도였다. 카스트로의 그 발표가 있기 전까지 쿠바에서는 달러가 자유롭게 유통되
었다고 한다. 멕시코의 괴기스러운 뉴스에 비하면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애교로 넘길 수 있었다.
 
 - p17

 

 
15. 판다
 
 사오리가 차풀테펙 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일부러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것이다. 고맙기는 했지만 가뜩이나 짧은 멕시코시티의 일정에 동물원까지 구경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안함을 무릅쓰고 사양하려는데 은서가 말했다.

 "아빠, 동물원에 판다도 있대! 나 판다 보고 싶은데!"

 아아, 하나뿐인 딸이 그렇게 말하는데 어떤 아빠가 외면할 수 있을까? 나는 금세 일정을 바꾸어 차풀테펙 동물원행을 결정했다. 딸에게 판다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내가 판다를 더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판다는 온 가족이 함께 구경해야 할 그런 동물이 틀림없다.
 
p 101

 
 
 
"쿵!"

"아얏!"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길을 따라 있는 작은 마을이나 주택이 나타날 때마다 도로에는 요철이 있었다. 차가 과속하지 못하도록 콘크리트로 만든 요철인데 유난히 높고 아무런 색도 칠해져 있지 않았다. 낮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1킬로미터, 아니 100미터에 하나씩 있는 것처럼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계속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잠이 들려던 은서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요철 안 보여? 안 보이면 좀 느끼라고!"

 느끼라니. 내가 말하고도 스스로 황당했다. 요철을 어떻게 느낀다 말인가? 포스로? 나는 주택이 나타나면 요철이 있으니 빛이 보이면 속도를 줄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비원이 아무런 경험도 없는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감으로 적의 살기를 느끼라는 것과 같은 꼴이었다.

 "좋아. 일단 몇 가지 규칙을 정하자. 우선 반대편 차선에 차가 나타나더라도 제발 피하지 좀 마. 지그재그로 달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요철. 요철이 나오면 내가 소리를 지를게. '요철!'하고. 알았지?

 아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후 나는 연신 '요철'을 외치기 시작했고, 아내는 그때마다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좀 익숙해지자 난 '요'까지만 외치기 시작했다. 무슨 힙합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효과는 있어서 더 이상 차 천장에 머리를 박지는 않았다. 은서도 곤히 잠이 들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우리는 12시가 넘어 호텔에 겨우 도착했다. 아내와 나 둘 다 목숨을 건 야간비행을 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사지에서 겨우 살아난 사람처럼 기진맥진한 우리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그토록 고생스럽게 운전을 하면서도 운전을 못하는 내게 핀잔 한 번 주지 않은 아내가 고마웠다.
 
 
p 158
 

 

 

 

이우일, 카리브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책은 다섯권 중 한-권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죄다 연장신청을 해야했습니다. 흑.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