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킨트

2009. 9. 4. 03:03 from Book


그러니까 하마, 누군가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해도, 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냐. 그것이 십일 월 저녁 일곱 시였고 그리고 부다페스트 거리에서였다면 말이지.


원래 쓰려던 감상은 이 책이 아니였는데 문득 저 문구가 생각나서 숨도 돌릴 겸 동물원 킨트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이 책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책에 나왔던 양 동물원 놀이와 엽서이야기를 동경했던 것도 있지만 몇년 전,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접한 다른 분의 감상 때문입니다.

동물원 킨트는 주인공인 '나'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채워져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시점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배수아씨는 그 주인공의 이미지가 한정되는 것이 싫어서 성별을 언급하지 않고 해석도 하지 않겠다고 적어두셨었거든요. 몇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또다른 인터뷰를 하셨을지도 모르지만요. 어쨌거나 그런 의도에 충실하게끔 '나'의 감정은 다른 사람보다 자유롭게 흘러갑니다. '나'는 우연히 만나서 친해진 '하마'에게도 호감을 가지고있고 그녀의 쌍둥이 사촌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른 남자와의 썸씽도 있었노라 고백하기도 했구요. 딱 한줄이였습니다만은 의도되었든 의도되지않았든 인상적인 부분이였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굳이 없어도 될 부분이였단 생각도 했지만 삽입된 문장이 작가의 의도라고 해야하나, "이 부분을 신경써주세요!"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거든요.

그런 작가의 메세지에도 불구하고 전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부터 이건 당연히 여자다, 라고 믿어의심치 않았었는데 어떤 분이 "당연히 남자다."라고 적어두신거예요. 놀랐었어요. 아, 남자로도 읽힌거구나, 배수아씨의 의도는 성공했군! 뭐 이런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이런 게 리뷰와 블로그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의 글을 볼 수 있는게 좋아요. 그리고 제 블로그와 리뷰도 그런 식으로 생각될 수 있다면 바랄나위 없겠죠.

그분이 계속 블로그를 하고 계셨다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포스팅이 그 시점에서 일년이 지나있길래 덧글 다는 것도 포기하고 돌아서야했지요. 지금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나눠보고싶어요. 제가 느낀 여성적인 부분과 그분이 느낀 남성적인 부분을 교환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러려면 동물원 킨트를 한번 더 읽어봐야하지만요.

맨 위에 적어둔 글귀는 제가 동물원 킨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저 부분을 떠올리면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도 떠올라요.


미키,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사라.

우리집 바로 근처에서, 신호 대기에 걸린 택시의 창문 너머로.

미키,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사라.

나의 뇌리에 두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진다. 가로등 빛에 드러난 그 낙서는 빨갛고 자극적이다. 과거에 내게도 그런 여자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생각도 나지 않지만,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모두들 귀여운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몇 명을 기억해낸다. 땋아 내린 머리에 리본을 묶은, 나비를 싫어했던 친구. 약국집 딸로, 곱상하게 생긴 남동생을 유난히 귀여워했던 친구. 엄마와 둘이 살면서, 초등학생인데 트로트를 좋아했던 친구.

세상은 지금도 그런 여자애들로 채워져 있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p95


미키,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사라. 이 부분 너무 좋지 않나요..
그러니까 하마, 누군가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해도, 도 좋아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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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킨트
배수아 저
웨하스 의자
김난주 역/에쿠니 가오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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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젤리빈 :